
“성범죄 의혹으로 황석희 이름 다 지웠다.” 한 웹사이트 메인에 걸린 기사 제목이다. SNS와 각종 포털은 뜨겁다 못해, 오히려 냉랭한 공기가 흐른다. 2026년 3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황석희는 과거 총 3차례에 걸쳐 성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는 5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광고업계도, 방송계도, 그리고 그를 팔로우하던 팬들까지 빠르게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이런 기사가 뜰 때마다 세상은 들썩이고, 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학생 때는 HOT의 강타를 정말 좋아했다. 그 시절 ‘버디버디’ 아이디를 굳이 공개하자면, “칠현아 빨리 와” 지금 다시 보면 어디로 뭘 빨리 오라는 건지… 그냥 민망하다. 그때는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든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며 무조건 감쌌다. 지금 떠올려도 부끄럽다. 당시 그 얘기를 꺼낸 사람을 원망했던 것도, 솔직히 미안하다. 최근에는 윤딴딴이라는 가수를 좋아했다. 직관적이고 유쾌한 가사가 좋아서 주변에 꽤 열심히 추천하고 다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관련된 좋지 않은 기사가 떴다. 기사를 보자마자,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고개를 떨구고 그냥 인정했다. 그리고 조용히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이런 경험이 나만의 일은 아닌가 보다. 비슷한 감정을 다룬 독립영화 ‘성덕’이 있다.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이 한 문장이 영화의 전부를 설명한다.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이어갈 수도 없고, 그 시절 자체가 허무해지는 감정. 그 애정은 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까지 번진다.

이번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결국은 배신감이다. 우리가 좋아했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우리가 알던 황석희는 다정한 문장으로 사람을 위로하던 사람이었다. 위트 있는 번역으로 웃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을 느낀다. 그가 했던 말과, 드러난 과거 사이의 간극에서. 그 간극이 지금의 분노를 만들고 있다. 연예 기사에는 늘 사건사고가 있다. 하지만 이후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는 달라진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책임지는지에 따라 그 실수의 무게는 전혀 다르게 남는다. 아쉽게도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반성과 해명 보다 ‘대응과 검토’ 를 선택했다. 아마 사람들을 더 크게 분노하게 만드는 건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의 태도일지도 모른다.